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저자 기젤라크레머
우리는 늘 바쁘다?
친하게 지내는 미국인 친구가 ‘미국 부부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12분에 불과하다’는 신문기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은 기껏해야 1주일에 40분이며, 미국인의 반수 이상은 잠이 부족하다고 했다. 미친 세상이다.
사실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항상 바쁘다. 아무리 우리를 신속하게 데려다줄 자동차, 모든 물건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온라인 쇼핑몰, 세계 구석구석을 연결시켜주는 전화와 인터넷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늘 바쁘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정말 시간뿐일까? 혹시 무엇이 중요한지 그 자체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모든 일을 좀 더 천천히 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내면의 간곡한 소리를 우리는 듣고 있는가?
아시아를 여행하는 중에 남편은 잡지에 실린 글을 읽어주었다. ‘항상 시간에 좇기는 일본의 성공한 젊은 부부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부모를 방문해줄 사람을 고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위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은 거의 시간이 없나 보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를 방문하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대체인력’을 구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말이다. 그것은 가족 중심적인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이 “독일에서는 부부문제를 상담할 경우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는 싱글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생활을 한다. 또한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여가시간을 지루하게 느끼는데, 이는 자업자득이다.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도 생긴다. 폭력은 더욱 빈번해지고, 대중매체는 폭력과 관련한 보도를 여과없이 마구 보도한다. 우리는 가끔 이런 소식도 듣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이 생태조직의 불균형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유독하기까지 하다고.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영혼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매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해답을 찾은 듯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고, 매일매일을 즐길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모두 비슷했다. 사실 아무리 기이한 현대의 삶이라 해도 아름다운 일은 많다. 건강한 몸이나 안락한 주거환경 등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작은 행복을 쉽게 넘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열 같은 하나, 단순하게 산다는 것
바보들은 항상 시간을 도둑맞는다
오래전부터 나는 행복과 단순함을 하나로 보았다. 불필요한 짐은 쓸데없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시킨다. 정말 행복해지려면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인생이 단순하고 행복해지려면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인생을 단순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면의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일들은 인생에서 추방해야 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시간도둑을 찾는 작업을 했다. 어떤 일과 활동이 불필요한지, 어떤 습관이 필요 없고 지루한지, 어떤 목표와 요구가 경솔하고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단순한 생활로 가는 길에는 거쳐야 할 작은 변화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 자동차는 꼭 필요한가?
․ ‘승용차 함께 타기’가 더 의미 있고 쾌적하지 않을까?
․ 몇 개씩 정기 구독하는 신문을 모두 읽고 있나?
․ 새 오디오가 구식 오디오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가? 혹시 잘난 체하려고 산 것은 아닌가?
․ 원하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가? 늘 꿈꾸어온 오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가?
․ 보고 듣는 대중매체 정보를 모두 다 이용하는가?
․ 녹화한 테이프나 구입한 DVD를 제대로 보는가?
․ 구입한 책은 읽고 있는가? 빌려 읽는 책이 직접 사서 읽는 책만큼 즐거움을 주는가?
․ 구입한 음악CD를 규칙적으로 듣는가?
․ 여가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아니면 시간을 무의미하게 죽이고 있는가?
․ 무엇인가를 놓칠까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다시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행복한 생활로 가는 첫걸음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한가로움을 위해, 집중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혼자 있기 위해, 아름다운 시간을 친구와 보내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지 않기 위해, 있고 싶지 않은 곳에 머물지 않기 위해…. 행복을 원한다면, 시간을 도둑맞지 말라.
오래전에 잃어버린 단순한 습관 찾기
소원을 글로 쓰기는 쉽다. 특히 큰 소원을 입 밖에 내어 말하기는 더욱 쉽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모른다. 때론 직접 말하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어떻게 살고 싶지 않은지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목표의 서열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습관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미래의 목표와 비전을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쁜 습관과 분별없는 행동 때문에 새로운 길로 가는 걸음을 방해받았다. 생활의 변화는 습관적인 행동 때문에 지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금까지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일상생활도 비판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나의 습관이 내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지, 혹은 단순한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을 가로막지는 않는지.
․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들은 나의 편인가?
․ 그들은 진심으로 나의 생활을 지지하고 있는가?
․ 그들은 과연 내가 원한 친구이고 지인이고 모임인가?
․ 오히려 그들과의 사귐이 나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는가?
․ 갑자기 처한 위기 상황에서 청소년기부터 보여왔던 나의 신경질적인 태도는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 무슨 일을 선택했고 그 일을 어떻게 마쳤는가?
․ 내가 일한 조건은 스스로 원하던 바였는가?
․ 나는 친구들에게 만족하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일과 개인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작은 일에 불만을 느낀다면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이켜보고 불행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것이 바로 변화의 ‘기회’다. 이미 오래전에 의미가 없어진, 당신을 그저 부담스럽게만 하는 익숙한 습관에서 시작하라. 우정과 사랑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물론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부재가 처음에는 엄청난 빈자리를 남기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빈자리를 좀 더 행복한 관계로 가득 채울 삶을 기대하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바라기는 쉽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인생의 소중함을 보는 법
“불필요한 짐을 벗어던지세요.” 나에게 조용히 이 말을 했던 그 사람은 두꺼운 책을 옆으로 밀어놓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수도원에 머물렀을 때이다. 나는 그곳의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60세쯤으로 보이는 그는 불필요한 짐을 벗어던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곳에 있기 전 그는 거액의 연봉을 받는 은행의 고위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수도자에 가까운 은거생활을 하며 명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당신은 다시 초심자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작은 일 하나하나를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새롭게 체험하는 겁니다. 권한이나 아는 체하는 행동을 집어치우고 새롭게 세계를 보세요. 당신은 가벼운 기분을 느낄 겁니다. 산뜻한 가벼움과 짐을 벗어던진 느낌을 말입니다. 과거의 짐을 등에 짊어진 당나귀 같다는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거예요. 정리하십시오. 필요 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팔아버리세요. 새 물건도 사지 마세요. 그런 행동은 그저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여유로운 공간을 만드세요. 당신의 마음속에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을 위한 자리도 만드세요. 구태의연한 생활태도와 일로는 도저히 체험하지 못할 그런 자리를 만드세요. 불쾌한 일이나 병이 당신을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은 도전입니다. 그 도전을 받아들여 당신을 성장시키고 이익이 되게 하세요. 당신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세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그리고 이 순간을 놓아버리세요.”
나는 그날 오후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내용을 마음에 새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이 말은 책임감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인생의 소중함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란 것을.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
자연을 온전히 느껴보라
모든 문화와 시대를 통틀어 인간과 자연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200년 전만 해도 인간은 동물, 물, 태양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을 했으며, 자연은 행복한 생활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기술이 발전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점차 멀어졌다. 사람들은 자연과 연결된 삶이 건강을 주며 병을 낫게 하고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잊었다.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순수한 자연을 접하는 일이 드물다. 그 결과 대도시의 아이들은 예전 같으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조차 책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접할 뿐이다.
숲, 초원, 평야를 바라보는 일은 긴장을 풀어주는 아름다운 체험이다. 자연은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고, 그 색채는 감각을 살아나게 하며, 신선한 공기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킨다. 야외에서 즐기는 산책은 일상의 일부다. 공원이나 가까운 숲을 산책하는 것도 그렇다. 산책을 하면서 우리는 태양과 하늘과 나무와 꽃의 아름다움 그리고 따뜻함을 만끽할 수 있다. 산책을 할 때는 항상 활기찬 마음을 가져라. 심호흡을 크게 해서 신선한 공기를 즐겨보라. 날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폭풍우가 몰아치든 상관없다. 이런 격언을 들어보았는가? “잘못된 날씨는 없다. 단지 잘못된 옷이 있을 뿐.” 때로 걸음을 멈춰 나뭇잎을 보고, 새소리에 귀 기울여라. 이슬에 맺혀 있는 태양빛을 향유하라.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다.
당신의 생활을 자연과 연결시켜라. 늦은 밤 잠이 안 오면 밖으로 나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밤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면 유감스러워 말고 여명을 즐겨보라.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동트는 광경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대도시에 산다면, 주말에는 시골로 차를 몰거나 근처에서 가장 큰 공원이나 농장, 동물원을 찾아라. 자연에서 당신을 충전시켜라. 이것이 최선이다. 그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센터도, 자연이 당신에게 매일 선물하는 영감과 힘을 주지는 못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자 하면 나를 잃는다
‘선택하다’라는 말에는 ‘교만하다’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하루라도 선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은 없다. 어쩔 수 없다. 하나하나 깊이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모든 소원을 이룰 만큼 돈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곁을 스쳐가는 모든 사람에게 우정과 도움을 청할 정도로 가슴이 넓지도 않다. 하지만 스스로의 기본적인 욕구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되도록 생활을 단순화해서 내 개인적인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나를 방해하고 성장을 도와주지 않는 것들은 잡초를 뽑듯이 골라내야 한다. 나는 불필요한 신문과 잡지의 구독을 끊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껐다. 지금 나는 세계의 주요 이슈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는 뉴스에 귀 기울이는 것보다 나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의 결과다.
텔레비전 화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세계적인 사건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영역에 힘을 집중하고자 한다. 나는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원하기 위해 힘닿는 대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인생의 뿌리가 견고해진다면 외부의 정보를 향해 나를 한껏 열어놓을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바 모르면서 텔레비전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조종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고, 어떤 뉴스에도 나의 코멘트를 정확히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 전부 알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하고 신뢰받을 만한 사실이어야 한다. 즉, 진실과 일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 뉴스 앵커와 편집자가 전하는 정보가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이라는 언론인들의 농담처럼 실제로 아름답고 유익한 사건 보도는 매우 드물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신중히 고려해 선택할 필요가 있다. 만약에 A라는 사람이 자신에게는 절대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거부한다면? 혹은 누군가가 나를 센스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나는 그의 반쪽 지식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선택을 했다. 그가 나름의 지식을 쌓는 동안 나는 다른 정보로 머리를 채웠다. 그러니 콧잔등의 주름을 잡고 목청껏 거친 소리로 서로를 어리석다고 비난하지 말자. 그보다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도록 하라. 이것은 평온과 평화를 의미한다. 세계의 작은 부분에서.
나와 너 그리고 삶, 그 어울림을 위하여
오늘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이 말은 행복을 지금, 여기에서 붙잡으려고 한 고대 로마인들의 명언이다. 그들에게는 현세만이 존재했고 저쪽 세상은 수많은 신들의 세상이었다. 그들은 신의 이름과 신의 역할을 자신들이 정복한 민족들에게서 빼앗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대 로마인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자신들의 이성과 지혜를 인정했다. 불교도나 기독교인들이 생각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아우르는 삶은 그들에게 낯설었던 것이다. 어쨌든 로마인들의 ‘오늘을 즐겨라’는 단순한 삶을 위해 효과적인 생각이다.
인생은 수많은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진다. 불행한 순간에서 갑자기 행복한 인생이 만들어질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심스럽게 집중하여 순간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행동이나 고통스런 일로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현재의 상태에 앙심을 품거나 불만스러워하고, 미래를 생각할 때에도 불신과 근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현재에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견디며, 꿈을 가꾸어 나간다. 지금과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약점을 극복하고 미래를 정복해야 할 도전의 시간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골머리를 쥐어짜는 행동은 시간 낭비다. ‘실수를 하면 어쩌나’,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소신과 반대로 일을 처리하면 어떡하지’, ‘내가 옳다고 확신한 생각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 어떡해’, ‘만약에 나를 비판한 사람이 옳다면’, ‘일생의 소망이 실현되지 않고 결국 실패하고 만다면’ 등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행동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도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런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 것이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 이 때문에 내면적인 성장을 이루려면 무릎이 깨져야 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하며, 당황스런 체험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그때그때 체험의 본질은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이런 태도로 인생의 순간순간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 순간을 나의 의지로 조직해간다. 이 능력이 바로 생명력이며,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금전적 자유를 위한 짧은 깨달음
아름다움을 발견할 시간을 가져라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수백 년 동안 철학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며 때로는 덧없기조차 하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크리스티 모르겐슈테른의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랑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배우자와 가족, 친구는 물론 병자나 장애인 등 누구에게나 찾을 수 있는 무엇이다. 나는 주변을 새로운 시선으로 하나하나 관찰했다. 이 많은 것 중에서 내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친하게 지내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20년도 넘게 예술품을 모았다. 욕심껏 예술품을 구입했기 때문에 그들의 집은 거의 박물관 수준이었다. 꽃병과 그림, 골동품, 세계 각국의 귀한 양탄자로 집안은 터질 지경이었다. 식당이나 공연장에서 그들은 만나면 화제는 늘 같았다. 무엇을 샀는지, 어떻게 소장품을 관리하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구입할지 등. 생명 없는 물건들이 그들의 인생을 결정했다. 그들은 소장품의 수를 늘리고, 잘 관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그들은 부를 즐기고 아름다움을 향유할 여유를 잃고 말았다. 오랫동안 그 부부를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느긋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은 수집품이 소중하긴 했지만, 그것이 시간과 관심을 지나치게 집어삼키는 바람에 자신을 위한 시간은 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바로 예술품을 내다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계속 소장하고 싶은지, 어떤 물건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몇 주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몇 가지 수집품만 남겨놓았는데, 그것은 이미 잊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지금 그들은 텅 빈 벽과 툭 트인 자유로운 공간을 즐긴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예술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똑똑한 사람은 집중하면서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아름다운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선반 위에 빼곡히 놓인 수천 점의 귀중품보다 세심하게 고른 꽃병의 한 송이 꽃을 마음껏 바라봄으로써 더 큰 위안을 얻는다. 소박한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사랑으로 바라보는 태도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시간을 가져라. 혹은 새롭게 체험하라. 차고 넘치는 물건에 매달리지 마라. 자리를 만들어 자신이 고른 개인적인 보물을 돋보이게 하라. 자신의 벽 안에 그리고 내면에.
인생에는 특별한 일이 너무도 많다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무언가 선물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선물을 받은 상대방의 놀라는 얼굴과 포장지를 뜯는 손동작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받는 다음 포장을 풀면서 기뻐하기보다 당황스러워하고 어색하게 행동한다. 이런 감정을 아는지….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반가운 선물에도 우리는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선물을 기쁘게 받아드리기 위해 좀 더 느긋하게 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힘들여 노력해 마침내 일을 끝냈을 때, 당신은 성공을 즐길 시간을 갖는가? 지나간 시간을 음미해보고 지난 일의 노고와 즐거움을 생생하게 그려보는가? 이미 끝난 일을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고 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잃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공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더 잘 알게 되고, 깨어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과거를 빨리 뒤돌아보면서 기쁨을 느끼게 되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볼 수도 있게 된다.
우리 인생에는 특별한 일이 너무도 많다. 종종 우리는 그런 일을 무시하거나, 잘 안다고 단호히 규정해버린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천천히, 세심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일상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배우고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느림은 버림의 미학에서 온다
커피숍이나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게 되면 그곳을 떠날 때 신문을 그 자리에 놓아두자. 누군가 그 신문을 읽으면서 공짜로 기쁨을 선사한 낯선 당신을 생각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장롱에서 자리만 차지하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이나 사용하지 않은 탓에 고장 난 물건은 없는가? 그런 물건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할지 알아보라. 일부는 이웃과 친척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학교 벼룩시장에 내놓을 물건을 모으는 아이에게 주자. 다 제자리가 있는 법이고, 기대하지 않은 선물에 반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은 선물로 우정을 쌓을 수 있다. 생일과 크리스마스는 물론 오늘 이 자리에서도 작은 선물은 환영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나는 부산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나온 여인에게 먼저 계산하도록 차례를 양보한다. 또, 판매원에게 일일이 미소를 선물하고, 기차에 오르는 할머니의 가방을 들어준다. 때로는 상대방 몰래 작은 선물을 하기도 한다. 커피 자판기의 동전 반환구에 잔돈을 남겨두기도 한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면 횡재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구호단체들이 보낸 청원의 편지를 읽어보라. 얼마나 착한 일들이 이 세상에서 매일 실현되고 있는지 새삼 놀랄 것이다. 기부금을 넣을 때 그 단체의 직원에게 짧은 감사의 편지를 동봉하라. 그런 편지는 그의 하루를 활기차게 해줄 것이고, 당신의 하루도 밝게 해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지도를 그려라
친절하게 말하는 “노”는 진실하다.
친한 친구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사실 나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집에서 빈둥거리며 소파에 누워 있고 싶었다. 그러다가 추리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라…. 나는 그 모임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결국 나는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는 마치 정치가처럼 ‘외교적’인 사람이 되어 즐거운 척 했고, 나중에는 다소 방종하게 그날 밤을 보냈다.
양보하고 상대방의 뜻을 따라주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생활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우리는 단순하게 “노”라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공간이 더 넓어진다. 그러나 계속 외교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해도, 상대의 호감을 잃지 않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안 돼”라고 말하라. 긴 설명이나 허튼 핑계를 둘러대지 말고, 다음 기회도 기약하지 마라. 나는 꼭 필요한 약속 외에 다른 약속을 하고 싶지 않다. 원하지 않는 일을 거절하면 스스로 시간을 원활하게 조절할 수 있다.
“노”라고 친절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라. 놀랍게도 친구들은 결코 불쾌해하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신에게 절교를 선언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저녁식사에 초대할 때 거절당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신뢰가 깨지지 않는다. 그런 사실에 나는 감사하고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울고 싶을 때는 울어라
우리는 눈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비탄에 잠겨 눈물을 흘린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겪은 뒤에, 허탈과 피곤을 느낀다. 그러나 영혼을 질식시키는 짐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느낀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라.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풀어헤쳐라. 눈물은 영혼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기쁨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슬픔에도 이유가 있다. 모든 느낌은 함께 한다. 아름다운 느낌이든 슬픈 느낌이든 느낌 하나하나가 우리를 생기 있게 하고, 인생을 의미 있는 결과물로 받아들이게 한다. 고통과 고뇌의 폭발이 두렵다면 시간을 가져라. 눈물을 마음껏 흘려 아픈 감정을 치유하라. 눈물이 나오면 억누르지 말고 실컷 울어라. 자신을 조절하려 들지 마라. 눈물이 얼마나 나오든, 얼마나 오래 울든 무슨 상관인가. 눈물의 양을 헤아리지 말고 자신의 어려움에 푹 빠져라.
눈물의 소금기는 고통을 씻어주고, 상처를 치료하며, 흉터를 아물게 하고, 삶에 활력을 준다. 마음껏 눈물을 흘리고 잠에 푹 빠져라. 깨어나면 기분이 홀가분해져 있을 것이다. 삶은 그때부터 다시 즐기면 된다.
용서를 실천한다는 것
당신은 몹시 흥분해 이성이 마비된 지경에 빠진 적이 있는가? 화가 나서 마음이 상하고 당혹감과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또한 오해받고 있으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당신은 더욱 더 어쩔 줄 몰라 한다.
참을성 있게 집중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갖도록 노력하라. 새로운 관점에서 곤혹스런 상황을 바라보아라. 자신을 제3자라 생각하면서, 상황은 이미 끝났다고 상상해라. 자신의 감정과 거리를 두자. 분노와 괴로움을 놓아버려라. 물론 그것은 힘든 일이다. 문제는 연습과 정신적 훈련이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약점까지 들추어내는 시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연습은 우리를 단련시킬 것이다.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관용을 연습하는 것, 용서를 실천하는 것, 한번쯤은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성미가 급한 사람을 대할 때도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로 세상을 뒤흔들 일은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모순적인 일이라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긴장이 완화되고 신경을 날카롭게 세울 일은 없어진다. 전쟁에서 평화의 길로 가려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부주의한 언행으로 인생을 그르치지 마라.
아름다운 세상을 느리게 살아라
영혼을 뜨겁게 찌르는 순간을 기록하라
일기를 쓰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이면서도 순간적으로 써내려가는 글쓰기를 말하는 것이다. 새롭게 마련한 시간에 종이를 충분히 준비하고 글을 쓰자. 영혼을 뜨겁게 찌르는 순간의 착상을 모두 써라. 멋지게 표현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완벽한 문장구조에 주의할 필요도 없다. 불완전한 생각으로 인한 내면의 혼란, 설익은 감정과 내키지 않는 일, 모순, 남모를 소원, 계획하지 않은 목표, 미숙한 정열, 고백하지 않은 실수,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재능, 잊어버린 방점, 키워지지 않은 능력, 몽상적인 애정, 본능적인 반감, 영혼의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써라.
글쓰기가 압박이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볍고 자유로운 감정을 느껴야 한다. 부담스러운 글쓰기는 우리의 삶을 결산하거나 행동과 위험과 목표를 재검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존재의 짐을 벗거나 가벼워지기 위해, 사유와 숨쉴 여유를 찾기 위해 생각의 강물을 따라 기록하라. 의식에 저장된 정보가 글로 옮겨지면서, 머릿속은 새로운 정보로 채워질 공간을 갖게 된다. 이것은 중요한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다음 문제를 위해 머릿속을 비워두는 것과 같다.
쓴 글을 재차 꼼꼼히 읽지 마라. 떨쳐버리고 싶었던 생각이 오히려 가슴속에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다. 때론 글을 쓰면서 난처한 상황의 해결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고삐를 늦추고 아무것도 조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흘러가는 생각의 강물은 정말 효과적일 수 있다.
느리더라도 날마다 새로워져라
우리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낯선 길을 가고자 하지만, 일상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도 어떤 습관이 나에게 해가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런 습관을 버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조언을 해주었다. “우선 변화시켜야 할 것들을 적어봐. 변화를 원하는 이유도 함께 적으면 좋아.”
그 말을 듣는 즉시 나는 펜을 들었다. “매일 아침 30분씩 일찍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해야지.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해.”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세상이 반쪽 난다 해도 내일부터 당장 시작할 거야.” 결국 효과가 있었다. 이튿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침 체조란 것을 했다. 그런 내가 자못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하루도 못 갔다. 오래된 습관이 나를 끌어앉혔다. 나는 계속 잠을 잤다. “난 어쩔 수 없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더 크게 소리쳤다. “나는 실패했어!”
하지만 스스로를 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습관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인내심을 가져라. 순간의 들뜬 기분으로 세운 목표라 해도 인내심을 가지면 이룰 수 있다.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기 원하는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기 위해 행동하기 전에 목표를 정해야만 한다. 이런 목표는 행동이 원천이고, 우울한 날이나 김빠진 날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다.
현실에 기반을 둔 목표를 세워라. 현실을 마주보자. 우리는 세계 랭킹에 드는 운동선수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아침마다 마라톤을 할 필요는 없다. 일주일에 20킬로그램을 빼거나 10센티미터씩 자랄 필요는 없다. 올림픽 우승자나 영화배우, 패션모델, 가수와 같은 자신의 우상을 염두에 두지 마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이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발전시킬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해지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부차적인 문제다. 새로운 길이 우리의 길이다. 우리 스스로 선택한 길, 우리는 바로 그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