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은 어떻게 최고의 인재가 되었을까
저자 링즈쥔
제1장 스타트 라인
회상
그의 성장 배경을 보면 그가 지금과 같은 성취를 얻은 것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저의 아버지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교사였습니다. 어머니는 농민이셨고 저도 농민이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시작한 첫 번째 학교는 외양간 초등학교였지요. 이 몇 마디 말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를 시작한 그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1972년 리카이푸가 푸른 하늘을 날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을 때, 태평양 서쪽의 이곳 중국 대륙에서 션샹양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낡아빠진 외양간 교실에서 자신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나 그 역시 리카이푸와 마찬가지로 바다 건너 미국에 있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션샹양은 그곳을 졸업하고 리카이푸와 같은 학위를 취득했다.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그의 성취와 명망은 리카이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사실 리 박사또는 션 박사라는 호칭에서는 두 사람의 경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해 내기 어렵다. 1972년 리카이푸가 부모를 떠나던 해에 션샹양은 여섯 살로 외양간 교실에서 2년간의 수업을 마친 상태였다.
한 아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생각은 일반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견해에 의해 형성된다. 션샹양이 성장해온 생활의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매우 똑똑하고 천재인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여섯 살에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아홉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매사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지고는 견디지 못하는 근성을 갖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역시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는 놀기를 좋아했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으며 산만하기까지 했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완전히 또 다른 또 하나의 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훗날 그는 이러한 심리가 일종의 반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 곁을 떠나 혼자 도시에 나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힘은 점점 더 강해져 그를 둘러싼 울타리를 파괴하고 외부로 격렬하게 표출됐을 것이다.
새로운 리카이푸 법칙
마이크로소프트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리카이푸는 이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도처에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주옥같은 말들이 처음에는 원장화제(院長話題)로, 나중에는 카이푸화제(開復話題)로 불렸다. 그 가운데 「나의 인재관」이란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그는 오늘날 지혜의 가치는 지나간 시대에 비해 커다란 차이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농업사회에서 가장 훌륭하고 효율적인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20% 또는 30%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인력은 보통 인력보다 500%, 심지어 1000%의 작업을 더 해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중국의 대학 교정으로 전해져 무수한 학생들을 열정에 들뜨게 했다.
리카이푸는 미국 대륙을 밟은 지 1년 만에 선생님과 학우들 사이에서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때부터 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테네시주의 한 천주교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을 공부했다. 어느 날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7분의 1을 소수로 바꾸면 얼마가 될까? 리카이푸가 곧장 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0.142857142857……. 모든 학우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선생님도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자신의 학생 중에 천재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카이푸의 마음속에는 맑은 거울처럼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사실 천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어머니의 감독 아래서 죽도록 외운 것을 끄집어낸 것일 뿐 답안을 생각해내는 데 전혀 머리를 쓰지 않았지요. 천재라는 말은 사실 하나의 함정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속에 빠져든다. 함정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높게 평가하게 만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출중한 이유가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2장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어라
자신감은 성장의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이정표다
오늘날 전 세계 1만여 명의 컴퓨터 학자들 가운데 장홍쟝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난(河南) 예헌(葉縣)으로 갔을 때 이제 막 우물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어린 사내아이였던 그가 지금은 멀티미디어 정보에 관한 이해와 검색, 브라우징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떠한 대역(帶域)이나 설비, 언어에도 장애를 느끼지 않고 신속하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멀티미디어 자동분석과 순서화, 가시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8년 전에 장홍쟝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그 업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홍쟝이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정규 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단계에 있었다. 어느 날 자습시간, 장홍쟝은 과제를 풀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그 자리에서 한바탕 훈화를 들은 뒤 교실에서 쫓겨났다.
이는 당시로서는 가장 엄중한 처벌이었고 아이에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모욕감을 주었다. 한참 만에야 교실로 돌아온 그는 서럽게 울었다. 그는 당시의 감정을 30년이 지난 뒤에도 잊지 못했다. 몇 주 후, 장홍쟝에게 기대하던 순간이 왔다. 정식시험이 다가온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이 시험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장홍쟝의 마음속에는 남달리 강렬한 소망이 있었다. 시험 결과 그는 마침내 원하던 대로 360명의 학생들 가운데 1등을 차지했다. 선생님도 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홍쟝은 선생님을 향해 두고 보자고 별렀던 마음이 이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이는 너무도 순간적인 깨달음이었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도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과 똑같은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 장야친과 장홍쟝, 션샹양 등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아이들은 잠재적 천재인 것이다. 불행한 사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나 선생님도 그들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똑똑함과 자신감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국제 학술회의에서 로저스 대학의 그루버(Gruber)박사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천재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놀라운 자신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배양되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론의 잠재된 논리는 이른바 천재아동들은 결코 유전적 변이의 결과가 아니라 환경의 자극에 의해 탄생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모든 아이들이 잠재적 신동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장야친도 비슷한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는 개인별 능력의 차이는 IQ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IQ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 고 말했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977년 겨울 어느 날 아침, 장야친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등교를 위해 책가방을 챙겼다. 막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의 어문 선생님이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은 흥분으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빨리… 어서… 빨리 이것 좀 봐. 선생님의 손에서 신문 한 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야친은 그《광명일보(光名日報)》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문을 읽는 순간 벼락이 장야친의 머리를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햇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신문을, 그리고 장야친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신기한 광채가 났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이 자신의 일생을 바꾸었음을 인정했다. 당시 그는 열한 살로 아직 성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해 봄, 중국에는 전에 없던 활기가 감돌았다. 도처에 격정이 가득하고 환희의 웃음이 넘쳤다. 매일 아침 대문을 열면 어김없이 기쁜 소식이 그의 얼굴로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누명을 벗은 것이 그에게 첫 번째 기쁨이었고, 이는 가정 전체가 침울하고 무거웠던 과거와 결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기쁨은 대입 시험의 부활이었다. 대입 시험의 부활은 그의 가족 전체에게 미래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신문을 들고있던 장야친은 미래의 길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다. 사건은 한 작가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가는 신동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허페이로 찾아왔다. 장야친이 자신의 생활을 공개하기 꺼리는 것을 보고서 그는 먼저 함께 산책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그날 오후, 장야친과 작가는 학교 주변을 이리저리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시골의 들판까지 걸어 나왔다. 해가 지고 하늘이 석양으로 붉게 물들었다.
‘동료들에 비해 너는 기초가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아니?’ ‘이 사람은 왜 내게 좋은 말을 안 하는 걸까?’ 장야친은 불쾌한 마음에 변명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제 실력으로 입학한 겁니다.’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장야친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넌 이제 시작일 뿐이야.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말을 마친 그는 장야친의 한쪽 어깨에 잠시 손을 얹더니 이내 몸을 돌려 가버렸다. 장야친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앞으로 두고 봐야 안다고?’ 장야친은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여러 해가 지나서 장야친은 당시의 기분을 떠올리며 말했다. ‘변화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났지요. 그분은 제게 매우 중요한 충고를 해준 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제 머 릿속에는 그분의 두 눈이 떠올랐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에요. 매번 자만심에 찰 때마다 그분의 목소리가 저를 일깨워 주었지요.’
제3장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훌륭한 자기 자신 이 되라
링샤오닝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성장했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중국 국내에서 졸업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배운 것은 모두 잊었지만 루쉰의 글 한 편만은 아직까지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루쉰은 그 글에서 중국 민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루쉰은 중국에는 실패한 영웅이나 멋대로 반항하는 사람도 적고 홀로 격렬히 싸우는 무사도 적다고 말했다. 승리의 징조가 보이면 우르르 모여들고 실패의 징조가 보이면 앞뒤 안 보고 도망친다는 것이다. 링샤오닝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지만 지금도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될수록 더욱 루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링샤오닝은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중국인이 급물살을 따르는 민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집단주의 교육을 받은 탓에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이상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요.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고 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중국 교육의 기준은 여전히 일원적입니다. 다들 말하는 것처럼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것과 같은 실정이지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관계없이 모두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겁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딱한 일이지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되지요. 이는 일찍이 루쉰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다투어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뿐 남들과 다른 일을 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말이에요. 사실 이른바 우수하다는 것은 반드시 한 집단에서 1등이나 2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링샤오닝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실감했던 관념이다. 지금도 그는 항상 자신의 두 아들에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장 훌륭한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된다.
나를 이끈 건 열망이었다
1985년 여름 방학, 장이자오는 MIT의 1학년 학생이 되었다. 그 해 장이자오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체격으로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매우 말라서 그런지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보였다. 그는 이미 교수들과 학우들 사이에 천재소년으로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이자오의 어머니는 발육이 양호하지 않은 아들이 집을 떠나 MIT로 가던 날 혼자서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장이자오가 처음 집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이미 하버드대학 수학학교에서 몇 달 동안 혼자 생활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겨우 열여섯 살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에서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진학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 점수가 부족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점수가 부족해 낙방할 일도 없고 얼마든지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학비가 없어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예컨대 하버드대학은 4명의 지원자 가운데 1명을 선발하는 꼴이고 MIT에 합격한 학생 가운데 절반은 고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던 학생들이다. 또한 좋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우수한 자질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학비도 상당히 비싸다. 명문 대학의 교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어려운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반드시 명문 대학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관념이 없고 아이들도 그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장이자오가 관찰해 본 결과 그의 학우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이 이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이자오의 마음속 열망은 점점 더 강렬해져만 갔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MIT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동기는 중국의 학생들과 다른 것이었다. 이는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한 압력이었다.
제4장 공부는 일종의 태도다
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자발성이 떨어질까
주원리는 서양 속담에 A급 학생은 남의 관리를 받고 B급 학생은 남을 관리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같은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은 장차 네 아들의 가정교사가 될 것이고 공부를 가장 못하는 학생은 장차 네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될 게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자기위안을 위한 말이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원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그의 표정은 자기위안이라기보다는 자기반성에 더 가까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또 다른 연구원인 장치엔은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순간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집의 상황이 이를 증명하지요. 제 둘째 오빠는 학교성적이 저보다 형편없었지만 그는 지금 여러 개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고 사업도 아주 잘되고 있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둘째 오빠네 가서 살기를 원하시지요. 주원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시아연구소의 여성 연구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 회사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여성 연구원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만큼 주원리에게는 틀림없이 남들과 다른 장점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열등생이 아니라 A급 학생으로서 중국의 교육제도에서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우등생이었다. 엄격하면서도 섬세한 가정교육을 받은 그녀는 부모님들의 마음속에서는 대단히 훌륭한 아이였고 선생님들의 기억 속에서는 아주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녀는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중점 초등학교를 거쳐 칭화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의 외모는 이름처럼 아주 단아하고 조용하면서도 야릇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도 이미 시그마 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다. 연구경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일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한 후, 미국 회사에서 여러 해 동안 연구원으로 일했다. 어떤 학생들은 스스로 이런 문제들을 제시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애당초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기도 하지요. 주원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문과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공계로 갈 것인가? 이것이 중국의 아이들이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선택의 기로였다. 사실 주원리는 문학을 매우 좋아했다. 주원리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회고했다. 모두들 문과에 진학하는 사람은 약자라고 생각했지요. 수리과목의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문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선택은 제가 하는 것이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그녀는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자주적 의식을 갖춘 학생은 못 됐다. 그녀는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에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분야에 가장 큰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긴 여정을 회고하면서 갑자기 일종의 자아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이미 학부와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서른 살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인생 전체가 마라톤이다
4년 전 가오지엔펑은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의 언어음성 식별팀에 들어오자마자 강렬한 경쟁의 분위기를 느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들어온 2명의 보조 연구원 디수어(邸碩)와 천정(陳正)은 뛰어난 인재들인 것 같았다. 게다가 그들은 둘 다 칭화 대학 출신으로 항상 자신보다 먼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주도권을 잡아 갔다. 때때로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면 그가 사태의 진상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해결책을 내놓곤 했다. 자넨 얼떨결에 섞여 들어온 사람인 것 같군. 리카이푸가 그에게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농담인 것이 분명했지만 가오지엔펑에게는 이 말이 비수가 되었다. 그는 조급해져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멍청한 새가 먼저 난다 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일하는 시간을 대폭 늘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연속 엿새 동안 야근을 하다가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은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끝이야, 난 끝난 거야. 난 저들처럼 하지 못해. 가오지엔펑은 속으로 생각했다. 리카이푸가 그에게 섞여 들어왔다고 한 것도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었다.
처음 리카이푸가 상하이 교통대학을 찾아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공을 설명했다. 리카이푸가 말을 받았다. 그건 미국에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연구하고 있는 분야일세.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겠나? 가오지엔펑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리카이푸가 다시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고 있나? 어떤 일이든지 최고가 될 수 있어야 하네. 차라리 마이크로소프트로 와서 언어음성식별 연구에 합류하는 게 어떤가? 이런 제안에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곧장 베이징으로 왔다. 그 후로도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정말로 얼떨결에 섞여 들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마음이 심란해지곤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럽기만 했다. 바로 이때 그는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장거리 달리기 경기를 생각해냈다. 그렇다. 달리는 도중에는 남에게 뒤처지든 앞서든 따질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자가 진정한 승자인 것이다.
제5장 천재들의 뇌는 만들어진다
오성(悟性)
중국의 공과대학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우수하고 중국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미국 학생들을 압도한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지만 장홍쟝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저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실제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보기에 중국 학생들이 수학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은 미국 학생들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기계적인 계산 능력이나 문제를 푸는 능력은 확실히 중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뛰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개념들을 새롭게 정의하고 자신만의 수학적 사유의 틀을 형성할 줄 아는 학생은 아주 드물지요.’ 장홍쟝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말 속에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언가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수학은 일종의 오성(悟性)인데 중국 학생들은 이를 하나의 도구로 배우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학자들은 대개 뭔가를 깨달아 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줄곧 수학을 하나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을 훌륭한 개념이라고 생각해 왔지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하나의 지식으로 배우고 있는 겁니다.’
‘그럼 왜 수학을 오성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장홍쟝은 설명을 계속했다. ‘아주 훌륭한 수학의 모형을 한 가지 배웠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누구나 현실의 문제를 이 수학의 모형에 잘 융합시킬 수 있을까요? 중국 학생들에게는 이런 능력이 부족한 데 반해 서양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장점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본 미국의 학생들은 수학에 대해 훌륭한 이해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받고서 제대로 풀지 못하거나 풀더라도 왠지 어색한 점이 있는데, 이는 그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잘 풀고, 혹시 풀지 못하더라도 실패의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할 줄 알지요. 수학을 잘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을 단순히 일종의 이론, 또는 정확한 해답으로만 이해하고 있지요. 실제로 수학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답안이 아니라 오성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성이 정확한 해답보다 중요하다는 말인가? ‘인간 능력의 높고 낮음은 결국 지식이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성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리카이푸나 장야친, 션샹양 등은 하나같이 오성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성이 천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에 의해 양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중국인들의 오성이 형편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오성이 중국의 교육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합니다.’
대뇌를 해방시켜라
바다는 산보다 크고, 하늘은 바다보다 크다. 그럼 하늘보다 더 큰 것은 무엇일까?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인간의 대뇌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뇌에 대한 담론을 들어보자.
장야친 - 연습문제를 많이 풀수록 대뇌는 더 위축된다
연습문제를 푸는 것도 약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이 풀수록 우리의 사유는 더 위축된다. 약간의 연습문제로 개념을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더 이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학습이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게 해 줄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가장 근본적인 정의를 이해하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진다. 문제의 요점은 세 가지뿐인데 사람들은 이를 여러 가지로 나누어 셀 수 없이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곤 한다. 이것이 바로 대뇌가 복잡해지는 과정이고 결국 문제 속에서 헤매게 된다. 나는 수많은 학생들이 간단한 것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안타깝다. 가장 간단한 것부터 잘한 다음에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장홍쟝 - 95점과 85점은 모두 A학점이다
중국의 학생들은 50%의 시간만 들여도 현재의 커리큘럼을 마스터할 수 있다.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또 다른 50%의 시간이 실제로 허비되고 있는 것이다. 갖가지 유형, 무형의 스트레스가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만든다. 학생들은 50%의 시간을 들여 학습내용의 95%를 소화하고 나서 나머지 5%를 소화하기 위해 또 다른 50%의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99%의 사람들에게 이 마지막 5%는 필요 없다. 투입량과 산출량을 비교할 때, 이 마지막 5%가 사람들에게는 가장 불합리한 것이다. 그러나 시험에서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이 마지막 5%다. 성패는 종종 1%, 심지어 0.1%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1점이 모자라 대학입시에 낙방했던가! 때문에 학생들은 이 1점 때문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학교에서는 95점과 85점이 똑같은 A학점이다. 둘 다 같은 수준에 속한다는 뜻이다. 미구의 학생들은 단 몇 점의 점수 때문에 온힘을 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보다 많은 시간을 다른 일을 생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가오지엔펑 - 다소 불합리한 논리의 관념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수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한 가지 과목뿐이었다. 다름 아닌 디자인 과목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모든 사로(思路)를 다 열 것을 주문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이 아니라 갖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디자인을 완성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것을 강조하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 친구가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 담긴 이야기가 바로 선생님의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건물의 높이를 측정해보라는 과제로 시작된다. 이는 원래 물리실험으로 학생들에게는 돌멩이 하나와 초시계가 도구로 주어졌다. 자유낙하 원리를 이용하여 건물의 높이를 재면 되는 문제였다. 모든 학생들이 이 원리를 알아 그대로 실행했지만 유일하게 한 학생만이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건물 관리인을 찾아가 건물의 높이가 얼마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지. 일을 하는 데는 바로 이런 사고가 필요한 거야. 논리에 부합하는 관념도 필요하지만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관념도 필요한 거지.
제6장 EQ시대
어떤 영역이든지 EQ가 IQ보다 중요하다
2000년 리카이푸가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 미국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중국에서 일한 2년이 가장 자랑스러운 기간이었습니다. 그럼 그 2년 동안 어떤 제품이 가장 자랑스러우셨나요? 제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어떤 제품이 아니라 제가 중국 학생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일이었지요. 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중국 각 대학의 교수 100명이 모인 자리에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앞에서 말한 미국 기자와의 대화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몹시 흥분이 되네요. 이번 기회에 100명의 저명한 교수님들을 통해 수만의 중국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미국에 유명한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수학적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현재 어느 영역에서 일을 하든지 EQ의 중요성이 모두 IQ의 2배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더 높은 직위의 사람, 예컨대 관리계층에서 EQ의 중요성은 모두 IQ의 9배 높았습니다. 이 점만 보아도 EQ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지요. 가령 IQ가 같은 A와 B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할 경우 분명 EQ가 높은 사람이 훨씬 우수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1년 뒤, 리카이푸는 기자들과 같은 주제로 다시 한 번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EQ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감과 자신을 아는 현명함, 자기 규율,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잘 대처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일을 할 때도 마치 자기 아이를 대하듯이 열정을 갖고 몰입하는 것입니다. 동정심과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이런 것들도 EQ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총명함과, 능력, 기술, 지식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도 EQ가 IQ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대학에 EQ교육 과목을 개설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들의 EQ를 발전시킬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부르고 공을 차고 싶으면 공을 찹니다. 아마 이로 인해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 이것도 큰 장점이지요. 반드시 칭화 대학 컴퓨터학과에 입학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방향이 어찌됐든 사람은 자유를 통해 발전해야 합니다. 분명히 네모난 것을 억지로 둥글게 만들 수는 없지요.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면 창의성이 사라지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득보다 실이 될 수 있으니까요.
황쉬에둥(黃學東)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고급 연구원이자 미국 전기전자엔지니어협회 마스터다. 그는 후난(湖南)위에루의 산기슭 아래서 태어났다. 1982년 후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영국 애든버러 대학에서 두 가지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 1년 반 만에 박사과정을 마쳤다는 것과 박사논문으로 최고의 논문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가 대단히 똑똑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IQ가 120이상이면 누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EQ에 있지요.
EQ의 힘
2002년 어느 날, 리스펑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대학 1학년 학생이 시안에서 보내온 것으로 갈수록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지고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고민에 빠져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으니 조언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이런 문제를 갖고 리스펑을 찾은 것은 정말 사람을 제대로 고른 셈이었다. 당시 리스펑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의 한 연구팀에서 팀장을 맡고 있어 매우 바빴지만 그럼에도 차분히 자리에 앉아 자신의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 학생에게 전달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해 전 중국 과기대학 교정에 나이 겨우 열다섯 살의 1학년 학생이었다. 그가 바로 리스펑이었다. 그는 남달리 똑똑하고 남들보다 노력도 많이 했다. 게다가 공부의 방법까지 장악한 덕분에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줄곧 원광(圓光)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해에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원광을 차지했다. 산둥(山東)성 전체 대학 입시에서 이공계 2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가 중국 과기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가 자신을 모집 담당 선생님에게 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담당 선생님이 목숨 걸고 그를 학교 측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전공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도 주어졌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그는 자신이 큰 골칫거리에 부딪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학기 시험성적이 위험한 수준인 하위 10명 가운데 하나로 떨어졌고 두 번째 학기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랫동안 공부해 오면서 한 번도 상위 3등 밖으로 밀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뒤로 밀려나 있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고 남들이 자기를 따라잡아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는 차츰 자신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미 맨뒤로 밀린 상황이라면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이제부터 최대로 노력해서 차근차근 따라잡으면 될 게 아닌가? 이상하게도 실패에 대한 마음속의 걱정을 떨쳐버리는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몇 등인지 개의치 않게 되었고 모든 스트레스도 없어졌다.
알고 보니 등수라는 것은 명예가 될 수도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2학년 말이 다가올 무렵 어느 날 갑자기 교수님이 그에게 말했다. 이번 학기 자네 종합 성적이 과 전체에서 2등이더군. 정말인가요? 그는 교수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문득 그는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능력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는 것은 IQ가 아니라 EQ다. 자신의 등수에 연연하다보면 제대로 능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발휘하지도 못한다. 등수의 부담을 벗어던지고 실패했을 때도 기분 상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런 좌절과 기복을 겪어본 뒤의 자신감은 그 전에 모든 것이 순탄하기만 할 때의 자신감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스펑은 이 대학생에게 보내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이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혁명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은 대학 입시는 인생의 십자로일 뿐이지요. 모든 사람이 좌절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학생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요. 문제는 좌절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7장 어머니와 아버지
집을 떠나야 할 시간
1978년 홀로 역에 서 있는 장야친은 열두 살 때부터 줄곧 집과 어머니 곁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학생이었고 그에게 대학 캠퍼스는 신비한 미지의 세계였다. 어서 가봐, 넌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말씀하셨다. 장야친에게 이 말은 아주 친숙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결정적인 순간에 닥칠 때마다 엄마는 입을 그의 귀에 가까이 대고 말씀하셨다. 어서 가봐, 넌 잘해 낼 수 있어! 장야친과 어머니 사이에는 특별한 묵계가 있었고 남다른 친밀감은 없었지만 서로를 굳게 신임했다. 어머니는 늘 훌륭한 아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이 똑똑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 아이는 정말로 똑똑해진다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천하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를 칭찬하기 좋아하고 부모의 칭찬과 허락이 아이의 심리발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장야친의 어머니가 보통 어머니들과 다른 점은 칭찬의 기술을 알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녀는 언제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해야 하고, 언제 아이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의외로 유약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거나 좌절감을 드러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강력한 격려를 보내주었다. 장야친은 여러 해가 지난 뒤에 그날의 느낌을 이렇게 회상했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천재로 키우기 원하지만 진정한 천재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가 보통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결코 겸손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아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인성 가운데 갖춰야 할 부분들을 자신의 아이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장야친의 어머니는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칭찬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얼마 동안 장야친은 기자들의 취재대상이 되었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그를 신동이라 부르면서 신문에 그의 성공을 대서특필하여 전국의 아이들에게 전파함으로써 모든 아이들이 그를 본받기를 기대했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기자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신문에 싣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잊지 마라 아들아, 명성이란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그리고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말들은 결코 대단한 것이 못 된다. 게다가 너는 아직 아이라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구분할 수 없단다. 이제 엄마는 출발하는 열차에 아들을 혼자 남겨두고 이내 가버렸다. 최초의 두려움이 가라앉자 장야친의 마음은 침착해졌고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른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어느 누구도 몸집이 작고 야윈 이 아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기차가 출발했다. 장야친은 여러 차례 타이위안의 집을 떠난 경력이 있지만 이번에는 영원히 떠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말한 것처럼 혼자서 미래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거대한 틈새
1984년 여름, 다섯 살 난 꼬마 왕이진은 아버지의 트럭에 푹 빠져 있었다. 트럭 기사인 아버지는 항상 그를 조수석에 태우고는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아들, 편히 앉아. 그런 다음 신나게 차를 몰았다. 이럴 때면 왕이진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고 아버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가까이에 있는 작은 가게로 물건을 사러 갔다. 그 사이에 왕이진은 아버지의 운전석으로 기어가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자신도 기사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앞으로 나아갔고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너무 놀란 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빨리 와서 구해 주세요. 재빨리 달려나온 아버지는 큰 소리로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외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차 문을 붙잡고 뛰어 올랐다. 바로 그 순간 트럭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이가 얼떨결에 뭔가를 조작했던 것이다. 몹시 놀란 아들은 차가 무섭다기보다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게 될 것이 두려웠다. 아버지도 너무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네. 어린 아이가 트럭을 다 운전하고 말이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차를 몰다니 정말 대단해.
왕이진의 집은 선양(瀋陽)에 있었다. 그곳은 중국 북방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도시였다. 어린 시절 왕이진은 항상 노동자 계급은 모두 뛰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결코 약속을 어기는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남을 위해서 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보답을 바라지 않았고,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자신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남들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특별히 관대해서, 아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어린 시절 왕이진은 관심 있는 것이 매우 많았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바둑도 좋아했고 운전이나 승마도 좋아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했고 모든 일을 자신이 말한 대로 실행했다. 그가 모든 열정과 시간을 컴퓨터에 소비하느라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할 때에도 아버지는 간섭하지 않았다. 아들은 지금까지도 자신을 놀라게 했던 아버지의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다. 그 따위 교과서를 공부하는 게 소용이 있겠니! 그는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왕이진은 자신이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상금과 집에서 저축한 돈 전부를 가지고 칭화 대학에 공부하러 왔다. 하지만 이 돈은 대학 1학년 동안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버지의 수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돈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고 큰소리쳤다. 2002년 왕이진은 칭화 대학을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의 엔지니어가 되었다. 아들은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는 사이에 아버지는 늙어서 아무 일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건강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지셨다. 그해 여름, 그는 고향집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몹시 야위어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178cm의 키에 몸무게가 겨우 45kg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왕이진은 마음 한쪽이 시려왔다. 아버지를 위해 뭔가 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받은 6개월치 월급을 전부 아버지에게 건네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이는 그가 평생 번 수입 가운데 가장 큰 액수였다.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가 평범한 사람이고, 바로 이 평범함으로 자신에게 많은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8장 멘토는 어디에 있는가
멘토의 도량
리카이푸는 교육의 핵심이 교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지도교수는 그에게 뼛속 깊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그날 리카이푸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자신의 지도교수 라지 레디(Raji Reddy)와 함께 언어음성식별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었다. 라지 레디는 미국의 대통령 특별위원회의 멤버로서 나중에 튜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도교수로서 라지 레디의 가장 뛰어난 점은 그의 학문보다는 오히려 그의 날카로운 안목과 인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마치 천우신조와 같은 감지력을 지니고 있었고 미래로 통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과학자로서 그는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았다. 그의 학생인 리카이푸가 그에게 세 가지 연구제목을 제시한다면 그는 매우 자신 있는 어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애당초 쓸모가 없는 주제라 연구를 시작할 수가 없네. 또 다른 하나는 쓸모가 있기는 하지만 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네. 세 번째 주제야말로 정말 훌륭한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구상이 실현되려면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필요할걸세.
리카이푸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존경하고 신뢰했지만 지도교수의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약간의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지도교수가 주장하는 전문가 시스템이 컴퓨터 언어음성식별의 정확한 방법이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통계학의 방법을 사용하여 다른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도교수의 첫 번째 반응을 학생은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라지 레디 교수가 말했다. 나는 자네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통계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지지할 수는 있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과가 증명하듯이 만일 라지 레디 교수가 여러 해 동안 전력을 다해 리카이푸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라지레디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언제나 자신의 학생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확신이 있다면 자네의 방법을 고수하며 나아가 보게. 그는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가장 좋은 기계를 제공했고 최신 자료를 찾아 주었다.
리카이푸는 타이완에서 온 홍샤오원(洪小文)이라는 젊은 동업자와 함께 언어음성식별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16시간씩 힘들게 작업을 했다. 오전 9시에 일어나 학교에 와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낸 다음, 오후에 귀가하여 1시 정각부터 다음날 이른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략 3년 반 동안 줄곧 연구를 계속했다. 그와 홍샤오원은 많은 논문을 썼고 최소한 10만여 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1987년 5월, 이 젊은이들의 세계에 서광이 비쳤다. 리카이푸는 언어음성식별 시스템의 식별률을 기존의 40%에서 단번에 80%로 향상시켰다. 그러나 1987년 초여름에 있었던 회의에서 리카이푸는 이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다면서 자신은 중요한 구상 한 가지를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 자신의 적막한 작업실로 돌아가 하루에 16시간씩 힘든 연구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놀라운 사건은 1987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일어났다. 리카이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컴퓨터를 키는 순간 뜻밖에도 언어음성 식별률이 96%에 도달해 있었다. 리카이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경험했지만, 1984년 지도교수와 나눈 대화를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의 가슴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그날 새벽보다 레디 교수와의 대화가 더 의미 있는 기억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보다는 라지 레디 교수를 만난 것을 더 큰 기쁨이자 영광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힘의 원천
주원우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의 주임 연구원이자 한 연구팀의 팀장으로서 4년 동안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여 수많은 국제특허를 획득했다. 또한 전 세계의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유명인사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컴퓨터 데이터 전송 및 처리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는 동행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는 마음속에서 지난 일들을 한 장면한 장면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키가 180cm, 어머니는 170cm입니다. 저는 부모님들의 피를 이어받아 이렇게 키가 크지요. 그밖에 저의 EQ와 성격은 거의 전부가 후천적으로 양성된 것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선생님들과 주위환경에 의해 배양된 것이지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거나, 대학시절에 베이징으로 가서 눈빛이 사방으로 빛나고 포부가 원대한 과학자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리고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장야친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 요컨대 이 세 가지 결정적인 만남이 저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우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스물네 살로 물리 과목을 가르쳤다. 전문학교 출신으로 그다지 뛰어난 교수 경력도 없었지만 그녀는 이 아이에게 마치 친누나처럼 깊은 관심을 가져다주었다. 그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을 보면 함께 나서 거들어 주었고 그가 밥을 먹지 못한 것을 알면 직원 식당에 데리고 가서 밥을 먹게 해주었다. 우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 되면 주원우는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우 선생님은 그에게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주원우는 원래 하얼빈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창사(長沙)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국방과학기술대학에서 레이더 전자를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그의 성적은 간신히 중상위권 수준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공부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 시절의 모든 수준이 그 이후 평생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주원우는 이런 생각을 부정했다. 그의 친구들 가운데는 당시에 칭화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칭화 대학과 베이징 대학, 중국 과학기술원 등을 찾아다니며 국외의 수많은 논문들을 읽는 과정에서 당시 전자학 연구소 소장이었던 차이전밍 교수를 알게 되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 미국 학자와 교수들을 알게 되면서 그들과 수많은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고 그곳의 학생들과 서로의 체험을 교류했다. 당시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토론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시야가 부족하고 사유방식 또한 그들과 다르며 입에서 나오는 말과 머릿속 생각마저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창사로 돌아왔을 때 교수님과 친구들은 그가 많이 변했고 문제를 대하는 안목의 폭과 깊이가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모두들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 이후의 그의 발전은 장야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와 장야친은 미국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고 항상 장야친의 논문을 보게 되었다. 처음 장야친을 알게 된 후부터 두 사람 사이의 교류는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사람이 평생에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은 한두 개에 불과할 것이고 많아야 세 개를 넘지 않을 것이다. 주원우는 줄곧 자신이 행운아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경험한 전환점마다 훌륭한 스승들이 곁에서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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