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석유없는 삶
제롬 보날디 저
1장 새로운 삶의 방식
슈퍼맨에서 크로마뇽인으로 / 배럴당 380달러, 그 후는?
위대한 석유 씨! 현대의 마법사이자 진정한 천재인 그에게 우리는 경제와 노동, 여가, 더 나아가 일상생활의 모든 열쇠를 맡겨 놓았다. 운송 수단 없이 우리는 살 수 있는가? 또한 난방 시스템, 온수, 섬유, 시멘트, 유리, 종이, 비료, 금속, 자동차, 농산물, 전기, 전자, 냉동, 석유화학, 플라스틱 제품들 없이 살 수 있는가? 의약품과 화장품 생산에도 석유는 꼭 필요하다. 즉 석유는 모든 것에 관련된 에너지인 것이다. 그런데 항상 혜택을 받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만큼 우리는 좀 더 일찍부터 경계했어야 했다. 지금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않았다.
참고로 유가 상승은 2006년부터 본격화하였다.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하자 사람들은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텔레비전과 인쇄 매체, 정치권에서는 유가 안정이 이제 끝난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배럴당 가격이 150달러로 급격히 오른다면, 회사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보는가?’라는 질문에 에어프랑스의 피에르-앙리 구르종 전무이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분명 우리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항공료 급등으로 빈 좌석이 크게 늘면서 과잉 공급 상태에 빠져들 것이고….” 150달러라고? 그럼 200달러에서는? 아니, 10년 뒤에 380달러라면?
오늘날 주택 난방의 70퍼센트 이상은 연료유, 가스, 전기에 의존하며, 교통수단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90퍼센트 이상은 화석연료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의존도에서 벗어날 준비를 약 10년 안에 다 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게다가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 가운데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은 2030년까지 단 9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주의자들은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유가 상승이 미래의 환상을 깨는 전조라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와 같은) 낙관주의자들은 지금이야말로 우리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다.
2장 석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유정탑(油井塔)이 마르고 있다 / 밑 빠진 독을 채워라
조만간 유가가 배럴당 38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징후들이 쏟아지고 있다. 첫 번째는 지질학적인 근거인데,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찾아내는 석유 매장량은 우리가 소비하는 양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참고로 석유 및 가스의 생산량을 연구하는 ‘아프소(Aspo)’협회는 생산량이 이미 최고점에 도달(그들은 그 시점을 2006년과 2010년 사이로 봄)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지질학자 출신인 캠벨은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의 석유 매장량 중 46퍼센트가 석유일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때 석유회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했던 시절의 일을 “나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매장량을 거짓말하고 부풀리는 일을 했었다”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석유 생산자들이 밝히는 원유 매장량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 설령 우리가 전문가들이 내놓는 석유 매장량 예측을 믿는다 하더라도 실제 매장량이 감소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예컨대 석유 수출 국가의 수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최근 석유 수출국 명단에서 빠진 국가로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규모 가와르 유전의 경우 이미 매장량의 48퍼센트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일 석유 생산 능력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석유가 모든 국가들의 경제를 지탱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면, 가격은 얼마나 오를 것이며 누가 그것을 살 수 있을 것인가?
10년 안에 유가가 배럴당 380달러에 이르게 되는 첫째 요인이 공급 감소라면, 두 번째 요인은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관계되는데,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 가격이 오르게 마련이다. 참고로 2005년, 유럽인들은 하루 약 1,2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였고, 미국인들은 거의 그 두 배 이상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경우 석유 소비량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거의 두 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앞으로 5년 안에 또다시 두 배 이상 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구입을 시작하게 된다면 6억 3천만 대의 자동차가 굴러다니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세계 에너지 사용량은 하루 약 1억 8백만 배럴에 달할 것이다. 참고로 2015년경 세계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1억 배럴로 추산되는데, 석유 수요의 8퍼센트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격이 지금(2007년 초 배럴당 55달러 기준)보다 일곱 배 더 올라야 한다. 이는 배럴당 380달러의 수준이다.
공포의 배럴
2006년 4월 파리에서 열린 한 석유국제회의에서 나이지리아 출신의 에드문드 다우코루 석유수출국기구 의장은 석유 가격이 비이성적인 요소들, 특히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요소들에 의해 실제로 상승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즉 석유 공급이 잘 이뤄진다고는 하더라도, 시장 매커니즘은 아주 작은 공포감만으로도 멈춰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소는 너무나 많다. 중앙아시아의 분쟁, 이라크의 곤경, 이란의 핵 위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푸틴의 가즈프롬 통제, 남미의 석유 국유화, 멕시코만의 사이클론…. 바로 이 같은 불안 요소들 때문에 수많은 석유 중개인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 시장의 극심한 불안에 직면한 국제에너지기구의 클로드 만딜 집행이사는 수입 국가들에게 소비의 감축을 호소하는 한편, 석유수출국기구에는 가격 불안정의 해소를 위해 ‘안전 쿠션’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즉, 2천만 배럴을 비축하였다가 위기의 순간에 방출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도 빨리 변하여 석유 자원은 고갈되고 소비는 급증하였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지정학적 위기가 심화되는 동시에, 거의 날마다 금융시장 불안이 만연하면서 석유 산업에 대한 투자는 감소하였다. 석유의 증산을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서 다른 유전을 개발하고, 기존 유전의 지층을 재개발하고, 더 멀리에 있을 석유 탐사를 위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또 정제 및 수송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의 주체들이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공식적인 주장과 달리 석유의 종말이 이미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유말고 다른 것이 있는가?
수많은 신기술의 탄생을 목격해온 우리는 효과적인 대체에너지 개발 방식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방식들을 잘 혼용하여 석유를 대체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이 분야의 과학 발전에 대한 분명한 발표도 없고, 그 효과에 대한 기록도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와 같은 날을 무작정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어떠한 재생가능에너지도 석유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① 비현실적인 석유 대체품: 아스팔트질 모래 또는 타르질 현암의 형태를 가진 ‘비전통 석유’는 이 같은 대체에너지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생산된 이 같은 종류의 ‘비전통 석유’가 채굴에 고작 몇 달러밖에 들지 않는 ‘전통 석유’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② 가스와 석탄(석유의 가짜 형제들): 석유에 가장 가까운 대체에너지는 탄화수소화합물인데, 이는 가스 또는 석탄 등을 휘발유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러면, 문제는 없는가? 사실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 매장된 석탄의 양과 질이 문제다. 석탄의 경우 오늘날 유럽에는 세계 매장량의 고작 7퍼센트가 남아 있을 뿐이며, 질이 낮은 아탄(亞炭)으로 이루어져 있어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다. 다음으로는 석탄 가격도 문제이다. 석유의 배럴당 가격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석탄 가격은 2003~2004년 사이에 이미 두 배나 올랐다. 마지막으로 가스나 석탄을 통한 액탄화수소 합성이 이산화탄소 방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운송 문제에 있어서도 석탄은 정통 석유만큼 경쟁적이며 효율적인 면을 보여 주지 못한다.
그리고 천연가스도 석유의 이점들을 제대로 이어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운송부터가 어렵다. 그리고 세계정세의 불안으로 수출국에서부터 수입국까지 안정적으로 가스가 도달한다는 보장도 없다. 예를 들어, 가즈프롬은 크렘린의 손아귀에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은 천연가스를 ‘위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야심을 갖고 있는데, 2006년 겨울, 모스크바 정부가 우크라이나로의 수송 파이프를 끊는 바람에 프랑스 가스공사는 공급받을 물량의 약 30%가 감소되어 가스 파동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석유 값에 보조를 맞춰 가스 가격을 정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또한 천연가스는 수요를 충족시킬 만한 충분한 공급 인프라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③ 식용인가, 연료용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탄화수소의 족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기적의 해결책이 바이오연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기적은 또한 신기루이기도 하다. 밀, 유채, 해바라기, 무 등을 재배하여 바이오연료를 생산해낼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식량 수확에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로서는 기술의 혁신적인 성과 없이 바이오연료가 석유를 대체하기는 어려우며 그저 보충 역할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다.
④ 수소에너지: 수소는 미래 연료전지를 위한 연료이자 미래 전기자동차에 적합한 연료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소는 우주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물질이지만, 우리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가스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석유를 채굴하듯 수소를 가스 형태로 추출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생산 비용이 너무 높아 현재로선 비효율적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10년 이내에 수소연료로 움직이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결국 석유를 완전히 대체할 에너지는 없는 셈이다.
정리하면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해결책은, 1973년과 1979년 석유 파동 시기에 이미 경험했듯이 에너지의 절약인데, 이는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벙어리 중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벙어리가 최악이다
내일 당장 배럴당 가격이 380달러로 치솟는데도, 왜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 정치인, 전문가, 기업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침묵은 이렇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책임이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나 경고음을 얻기 위해, 또는 장기 비전을 갖기 위해서라면 석유회사에 기대하거나 정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귀머거리 중에는 들으려 하지 않는 귀머거리가 최악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닥쳐 올 엄청난 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애써 무시한다. 항상 ‘나는 아닐 거야’라는 예외 법칙을 적용해 버리는 것이다. 즉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정보나 대책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관심을 두려 하지도 않는데, 들으려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심각한 청각장애는 없다.
3장 2016년 5월 5일, (거의) 석유 없는 삶은 어떻게 될까?
지금부터 이어질 짧은 이야기는 연구 작업의 결과물인데, 이 이야기는 우리 인류가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해 향후 10여 년 동안 새로운 도전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재앙의 시나리오도 대참사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경험하고, 체화하고, 견디어낸 위기, 우리 일상생활에 자리한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 예측 전문가들의 책상 서랍에는 이보다 훨씬 두려운 시나리오들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르사프’가 발표한 새로운 직업 양상
2016년 5월 5일, 프랑스 가족수당 및 사회보장 분담금 징수연합 우르사프(Urssaf)는 분담금 징수의 새로운 대상이 된 직업 목록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발표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농업 관련 직업 : 날품팔이, 풀 뽑는 사람, 경작인, 밀 베는 사람, 마을 공동 소치기, ② 물 관련 직업 : 수상버스 안내인, 배 도착 견인 사공, 다리 책임자, 하역 인부, 해체업자, 뗏목꾼, 보트 조종사, 제방 관리인, 물길 안내인, ③ 수공업 관련 직업 : 벽토 반죽가, 만물 수선공, 중고 구두 전문업자, 땜장이, 수레 만드는 목수, ④ 운송업 관련 직업 : 배달꾼, 짐꾼, 물품 세금 관리자, 마부, 행상인, 인력거꾼, 짐마차꾼, 운반꾼, ⑤ 공업 관련 직업 : 선박 목수, 회반죽 바르는 사람, 도로 포장공, 제재업자
잃어버린 에너지를 찾아서
피에르는 넝마장수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역시 넝마장수였다. 그런데 3대를 거쳐오는 동안, 그 일의 성격이 변하였다. 넝마장수는 가족기업으로 성장하였고, 피에르는 이제 도매상인이 되었다. 참고로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물건을 줍는 일을 하는데, 넝마를 줍는 사람들에게 최고 인기 품목은 구리와 기타 비철금속, 특히 최근에 각광 받는 알루미늄이다. 아무튼 에너지 위기의 초기에 피에르는 매출을 두 배로 올릴 수 있었다. 그 대신 그는 야간 경비원 또한 두 배나 더 채용해야 했다. 왜냐하면 구리, 알루미늄, 또는 이런저런 금속들은 모든 도둑들이 탐내는 귀중한 품목이기 때문이다. 한편 피에르는 자신의 고철장수 직업이 지금 당장은 재미를 보고 있으나,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이 더 이상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5월 5일, 피에르는 자신의 직업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꿈꿔 왔던 일로, 바로 에너지 공급자가 되는 일이었다. 석유 위기가 그의 사업 방향을 다시 조정해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배럴당 380달러 수준에서 피에르는 열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우고자 한다. 즉 부족한 열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작은 발전소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지역난방 회사 및 시멘트 제조업체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되고자 한다. 피에르는 지역 차원의 에너지 자립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최고의 선택임을 알고 있다.
입시세(入市稅)의 부활
오늘, 2016년 5월 5일은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님시에 시장이 서는 날이다. 도시 동쪽에 있는 톨게이트는 대단히 분주한데, 통행료 징수대는 예전에도 있었으나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났다. 왜냐하면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야 하는 것은 전과 변함없지만, 지금은 도시에 들어오기 위한 돈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입시세(入市稅)인 셈이다. 보충 설명하면 가차없는 세무 논리가 적용됨에 따라 이 도시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모두 이 세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는 전기세, 상ㆍ하수도세, 쓰레기 처리비, 시설이용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액수는 운반하는 물품의 양과 가치에 비례하여 책정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비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 도시 내의 생산업자들에게는 거의 무료 수준이다. 반면에 수입된 외국 상품들은 다른 제품에 비해 많은 요금이 부과된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한 가족이 아니며, 각 지역은 자체적으로 이 같은 보호주의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참고로 국가 전역에 걸쳐 이루어진 중앙정부의 탈권력화는 재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부분적으로 자율화한 지방정부들은 자체적인 재정정책을 펴게 되었는데, 이는 세금을 낸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기본원칙을 따른다. 따라서 도로 위에서 세금을 낸 사람은 그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많은 지방정부에서 예산 확보를 위해 입시세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연료탱크 속의 설탕
이번에는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다. 그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제과업에 종사해 왔다. 과자의 주원료는 설탕이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제과업자는 설탕의 시세가 정확하게 석유 시세를 뒤따르고 있어 완전히 의욕 상실 상태에 빠져 있다. 설탕 가격은 내일쯤 톤당 2,500달러를 넘어설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설탕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른 지 벌써 10년째다. 이는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움직일 대체연료를 찾기 시작한 시점부터이다. 그 무렵, 미국인들은 세계 석유의 25퍼센트를 소비하고 있었다. 참고로 설탕은 과자와 사탕을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에탄올을 만들 때도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설탕에 대한 공급 부족 우려가 시세를 오르게 했다. 이는 제과업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었다.
사륜구동을 타기에는 운수 나쁜 날
2016년 5월 5일, 오전 3시, 파리. 네 명의 남자가 비밀위원회 ‘4x4=0’에서 이제 막 결정한 사항을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18구 제르멩-필롱 거리 5번지에서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순식간에 자전거에 올라탄 그들은 빠른 속도로 앵발리드 방향으로 향한다. 이들은 21세기 초, 수많은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경고하고 나설 때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성장한 행동단체의 열성회원들이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은 몹시 거슬리겠지만, 이들의 행동은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과격하다.
예로 ‘공기와의 연대’라는 단체는 도로 위에 주차된 사륜구동 차들의 바퀴를 모조리 펑크 낸 후 자동차 앞창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미소를 지어 봐요. 인상을 펴세요! 이웃의 건강을 생각해 봐요. 공기를 맑게 해 봐요.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안녕.” 사륜구동 차들은 다른 차들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행동에 나선 대원들이 사륜구동 차와 덩치가 큰 차들을 몰아내기 위해 거리를 누빈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들은 항상 강력본드와 종이딱지를 갖고 다니며 불과 10초도 안 돼 범퍼에 본드를 바르고 종이딱지를 부착했다. 또 차체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특히 유가 급등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 없는 고위공무원들의 차를 집중 공략하였다.
앵발리드 광장에 도착한 네 사람은 갖기 흩어진다. 두 사람은 정찰을 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다. 오늘밤 특별작전을 수행할 장소는 앵발리드의 뜰 쪽에 자리한 토탈이다. 운전자들은 이곳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세차까지 한다. 입구 난간에 선 두 행동대원은 목표물을 찍으며 미소 지었다. 최신식이고 몹시도 깨끗한 607, C6, 벨사티, 칙칙한 색깔의 사륜구동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 행동대원은 지금 스스로 되뇌고 있다. ‘지구 표면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제거되고 소멸돼 가는 순간이라 해도 정의와 연대의 힘이 다시 살아난다면, 자연과 인간을 업신여기는 자동차 같은 오염의 상징물들을 추방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세상은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잡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들의 행동은 TFI의 저녁 8시 뉴스에서 톱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멋진 수레꾼
2016년 5월 5일, 제품의 대량 수송을 위한 큰 거룻배에서 열차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간단한 배낭을 메고 도로를 누비는 배달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배달망이 구성된다. 새 배달망의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되는 수레꾼은, 수송 선박 등을 이용하는 원거리 대량 배달과 근거리 소량 배달, 즉 삼륜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직접 발로 뛰는 배달을 잇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보충 설명하면 디젤이나 액화석탄의 높은 가격을 이기지 못해 대다수의 화물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하게 된 말수레는 상업 물류의 유통은 물론, 가정으로의 식료품 배달까지 다양한 배달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수레꾼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보증금을 내고 말 두 필과 수레를 빌린다. 일단 수레에 짐을 모두 실으면 수레꾼은 비상전화로 소속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린다. 회사에서는 1분 안에 그에게 답신해 어느 중간상인과 가게로 물건을 운송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 물건은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운송된다. 가게에 도착하면, 수레꾼은 다른 일꾼과 함께 짐을 하역한다. 다른 일꾼 역시 소속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온 길이다. 이따금씩 물건은 내리자마자 팔려나간다. 왜냐하면 가게 주인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로부터 텔레비전, 오디오 등의 품목을 주문받아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배달망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된다. 삼륜자전거 또는 배낭을 멘 도보 배달꾼이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물건을 배달하는 것이다. 첨단 정보기기와 수레, 배낭을 멘 배달꾼…. 10년의 세월 동안, 상품의 배달체계는 많이 변했다.
뗏목의 재발견
배럴당 380달러의 위기로 물류대란에 휩쓸린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공장 문을 닫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엄청난 시간과 경비를 들여 공사해 온 7천 킬로미터 이상의 수로가 드디어 뚫리게 되었다. 물론 선박의 기항 시간은 길어졌지만, 운송비용은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참고로 여러 가지 수상 교통수단 가운데, 땔감용 나무, 건축용 나무, 또는 껍질이 붙어 있는 관목 등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은 뗏목이다. 그런데 뗏목은 1년에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3월부터 6월, 9월부터 12월까지다. 이 기간 중에는 강물이 풍부해 나무가 안전하게 떠다닐 수 있다. 그러나 건조기인 여름과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에는 뗏목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뗏목꾼들은 이 기간 동안 포도 수확을 돕거나 나무를 벌목하는 등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바캉스 도로
2016년 5월 5일. 당신은 먼저 생활비 내역을 살핀 후에 가족과 함께 떠날 바캉스 예산을 세워 본다. 에너지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미 가족들에게 올해에는 바다를 보러 가자고 약속한 상황이다. 결국 서랍 깊숙한 곳에 꼬불쳐 둔 비상금을 동원하여 숙소예약과 식료품 구입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기차요금은 늘 오르기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용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자동차나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아르카숑 해안으로 갈 일만 남았다. 물길을 이용하는 여객선의 경우, 1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 하루가 걸리기에 부자들은 선호하지 않지만, 당신은 이를 선택하기로 했다. 당신은 지도를 꺼내 일정을 세워 본다. 마르세이앙까지는 자전거로 여행할 계획이다. 야영에 필요한 텐트와 도구는 직접 만든 작은 트레일러에 실어 자전거에 매달고, 아이는 어린이용 안장에 앉힌다. 프라드-르-레에서 마르세이앙까지의 60킬로미터 거리는 서두르지 않고도 이틀 동안에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밤에는 메즈에서 캠핑을 할 것이다. 마르세이앙에 도착한 다음에는 미디운하를 타고 툴루즈까지 올라가는 고속연락선을 선택하지 않고, 훨씬 더 저렴하면서 바캉스를 보내기에 편안한 수단을 선택할 것이다. 바로 수로의 많은 도시들을 연결하는 배를 타는 것이다. 즉, 5일 동안 베지에르, 카페스탕, 마르세에트, 카르카손, 카스텔-노다리 등을 거쳐 툴루즈를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툴루즈에서 보르도 근처 빌나브-도르농까지 가론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10여 일쯤 지나면 마침내 빌나브-도르농과 아르카숑을 잇는 도로 위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바다의 물보라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하게 되는데, 약 8일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일주일은 자전거로 가론강을 따라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달리며 텐트 야영을 한 다음, 배를 타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멋진 휴가를 즐기게 될 것이다. 2016년, 우리는 비행기와 기차를 탈 수 없게 되겠지만,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인터넷은 위기의 거리를 좁힌다
니콜라가 처음으로 웹사이트를 만든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방정부와의 협력 속에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차 함께 타기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지방 당국은 도시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과 수리고, 차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약속 장소를 만들었고, 니콜라는 자신의 사이트에 이들 장소에 대한 정보를 올려놓았다. 어느 정도 사이트가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 공간을 통해 함께 탈 사람을 찾고, 연료비 분담을 의논하고, 약속 시간을 정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 트럭은 어떠한가? 지방정부 및 운송업체의 요청에 따라, 니콜라는 이번엔 트럭을 임대차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운송업체들은 먼 거리를 빈 차로 운행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기에 이 모델은 위기 전에도 이미 존재했었다. 그런데 오늘날, 트럭은 시속 6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료를 절약해야 하고, 또 시간이 더 이상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져 있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중량이 큰 대형 화물트럭만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왜냐하면 38톤 이하 화물트럭은 수익성 면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낭비를 줄이려는 이 같은 노력은 국민적, 지역적 운동으로 뒷받침되었다. 참고로 지방정부는 트럭 운전자들을 위해 만남의 장소, 물건 창고 등의 ‘소포 연결망’도 만들었는데, 이곳은 모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다.
니콜라가 만든 세 번째 사이트는 지역 주민들 사이의 물품 교환을 위한 공간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조립품이나 부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거나 교환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주로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운송비용 부담으로 인해, 예전처럼 외국에 물건을 주문하거나 먼 지역으로의 상품 배달을 요청하는 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니콜라의 사이트는 중고품 시장의 확대를 가져왔고, 그 결과 중앙정부의 세금 관리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상품 거래의 대부분이 영수증 없이 이루어져 부가가치세 부과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니콜라의 네 번째 사이트는 기계 수리 정보와 제품 재활용을 위한 신기한 방법, 오래된 물건을 활용하는 법,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 등을 담고 있다. 에너지 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고쳐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는데, 니콜라의 사이트에는 창의적인 사람들과 손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어 거대한 정보의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니콜라는 한편으로 위기가 인터넷의 원래 정신을 되살렸다고 기뻐한다. 나눔과 무상과 연대의 정신이 그것이다.
비닐봉지의 부활
주키앙은 중국인이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생-케베라는 조그만 마을에 거주하면서 일하고 있는데, 주키앙이 10년 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여기서 중국인이 뭘 하지?’라며 의아해했다. 이미 세탁소는 두 곳이나 있었다. 주변에는 공장도 없고, 군부대도 없으며, 광산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사람들은 주키앙이 그곳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충격을 받았다. 주키앙은 중국 기업에서 파견된 사람으로, 농업용으로 쓰고 난 폐비닐을 회수하는 시설을 맡아 세우고 있었다. 주키앙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모든 지역을 샅샅이 뒤졌고, 이렇게 수집된 비닐들은 깨끗하게 세척된 뒤 중국으로 보내졌다.
이 같은 사업은 중국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프랑스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질 나쁜 플라스틱이 컨테이너에 실려 중국으로 건너가, 다시 장난감, 파이프, 자동차의 범퍼, 쓰레기통 등 재탄생되어 수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주키앙의 회사는 몇 년에 걸쳐 이러한 일을 해 왔고, 생-케베에 있는 회수 시설도 규모가 커져 30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모두 만족해했다.
오늘, 2016년 5월 5일, 주키앙은 회사에 새로운 기계를 설치한다. 바로 수만 개의 비닐봉지를 찍어낼 수 있는 사출기다. 참고로 비닐봉지는 유럽 국가들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작을 금지했던 물건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물질이 토양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돌고래 등 동물들을 죽인다고 비난하였다. 그래서 슈퍼에서도 물건을 담을 때 비닐봉지 대신에 나무 재질의 재활용 종이봉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주부들은 봉투가 너무 자주 찢기는 바람에 내용물을 거리에 쏟는 등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석유가 갈수록 비싸지면서, 프랑스인들은 집요한 고집을 버리고 어느 정도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플라스틱 제품이 전체 석유 정제량의 4~5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지금 쓰고 있는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 제품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전체 석유 액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주키앙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비닐봉지 제작을 시작한다. 이 비닐봉지는 수차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다. 쓰레기를 담을 수도 있고, 아기의 대변이나 고양이의 변을 처리할 수도 있다. 또 석유처럼 활활 불에 탈수도 있다. 이처럼 비닐봉지는, 석유가 단 한 번 사용으로 사륜구동 자동차 엔진 속에서 그 즉시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는 달리, 몇 차례 더 생명을 지속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키앙이 여론에 자신만만해하는 이유이다.
'HRD(교육) > 1.경영도서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략적 사고 (0) | 2019.09.17 |
---|---|
경영학 콘서트 (0) | 2019.09.07 |
'나'만 재능을 발견하는 방법55 (0) | 2019.09.06 |
(마케팅) 이런 팀장이 회사를 살린다 (0) | 2019.09.05 |
대처 VS 클린턴 리더십 (0) | 2019.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