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칭기스칸
저자 김종래
출판사 삼성경제연구소
프롤로그 -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萬人)의 꿈은 현실이다
지금부터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이 있다. 8시간 후의 주식 가격을 알 리 없고, 8개월 뒤 전세 값이 오를지 내릴지 또한 모르는 판에 800년 전 세상을 요즈음 사고방식으로 살다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다들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헛소리가 아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가량 북으로 날아가면 몽골을 만난다. 이 나라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와 척박한 자연조건을 지닌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곳에서 살았던 칭기스칸,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12~13세기, 칭기스칸의 삶은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시작됐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나무도 없는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이었다. 그래서 그는 글을 몰랐다. 쉽게 말해, 야만인이었던 셈이다. 기약할 수 없는 이동과 끊임없는 전쟁, 잔인한 약탈이 그가 배울 수 있는 세상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징기스칸은 절망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 현실을 극복해 냈다. 그는 선대로부터 이어오던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고 몽골 고원을 통일한 다음, 바깥 세상으로 달려나갔다. 칭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에 이른다.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더욱이 당시 몽골 고원 인구는 100만~200만 명이었다. 이 숫자가 중국, 이슬람, 유럽 사람 1억~2억 명을 정복하고 거느렸다. 그것도 무려 150년 동안이나.
몽골 유목민은 문자도 변변치 못한 민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성공 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꿈’이다. 그들은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가꿔낼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제로섬 게임의 땅
몽골에는 ‘강(Gan)‘과 ’쪼드(Dzud)’라는 두 재앙이 있다.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적 가뭄이고, 쪼드는 가뭄 뒤에 때 이르게 들이치는 강추위다. 두 재난은 농경 정착사회가 겪는 태풍이나 지진보다 훨씬 무섭고 위협적이다. 몽골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대대로 겪었다. 강과 쪼드에 의해 가축이 죽으면 사람도 먹을거리가 없어져 따라 죽는다. 그런 상황에선 전쟁이나 약탈도 불가피하다. 죽어 널브러진 가축들 곁에서 유목민의 최고 가치는 ‘살아 남는 것’이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스스로 강인해져야 한다. 몽골 유목민의 강인함은 바로 ‘자연에 맞서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됐다. 그 본능은 지금껏 온전히 이어져 오는 성인식에서 엿볼 수 있다.
가장 혹독하게 추운 날, 신호가 떨어지면 소년들은 말을 내달린다. 왕복 80km에 이르는 눈보라 길의 출발이다. 소년들은 지평선 끝에서 사라졌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지평선 위로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통과의례의 결실은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보라를 뚫고 온 아이들과 말의 모습은 참혹하다. 하지만 소년들의 눈빛만큼은 형형하다. 어떤 소년은 너무나 힘든 나머지 고삐를 놓쳐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는 법은 있어도 말 타기를 포기하는 법은 없다. 말의 입가엔 온통 입김이 허옇게 얼어붙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말 고삐를 쥐었던 소년들의 손도 얼어 퍼렇게 동상을 입었다.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면 동상 걸린 손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몽골 아이들은 시련의 들녘에서 강인하게 성장한다.
800년 전, 몽골 유목민은 무자비한 내전에 휘말려 있었다.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그리고 몽골까지 다섯 부족으로 주요 세력권이 나뉜 채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이 이어졌다. 그것은 목초지, 가축, 약탈물을 차지하고 다른 유목 집단을 복속시키려는 싸움이었다. 희망은 어디에 있었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몽골 고원은 동족을 상잔하는 제로섬 게임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내전을 종식시키고 고원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결론을 내렸다.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몽골인들을 해방시키는 길은 몽골 고원 바깥에 있다.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자.
그래야만 모두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고 더 이상 동족상잔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몽골 유목민들은 고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루에도 몇백 킬로미터씩 대지를 내달렸다. 그러면서 그들의 질주하는 여정을 따라 세계 질서가 그들 눈앞에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 앞에 무릎 꿇는 농경 정착민들을 보면서 머물러 사는 자의 안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목격했다.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시킨다.
개인적인 약탈을 금한다
칭기스칸은 인간관계를 맺은 평생 동지, 평생 형제들과 꿈을 공유하기 위한 새 제도를 도입한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은, 패퇴했거나 항복한 부족으로부터 우선 가축부터 빼앗았다. 경우에 따라 여자까지 취했다. 나쁘게 말해 약탈이고 좋게 얘기해 전리품을 챙기는 셈이다. 몽골인들에겐 그 전리품을 누가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칭기스칸이 전리품 획득과 배분에서 새로운 조치를 내리기 전까지는 일종의 선착순 약탈방식이 지배했다. 적이 달아난 뒤 적진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가축이든 여자든 취했다. 개인적 약탈이었던 셈이다. 이 방식에선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만 득을 볼 수밖에 없다. 뒤에 서거나 간접적으로 전투를 도운 사람, 다른 사정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돌아오는 게 없다. 칭기스칸은 이런 불공평을 해소하고, 조직 전체 전투력과 소속감을 높일 목적으로 혁신적 조치를 단행한다. 전리품을 공동 몫으로 두고 누가 얼마만큼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나눠 갖는 공동 분배제였다. 이 방식에선 선봉에 선 사람은 싸운 만큼 자기 몫을 차지하고, 뒤에서 싸움을 도운 사람에게도 몫이 돌아간다.
예를 들면 활이나 칼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도, 척후병으로 적을 발견해낸 사람도, 말발굽을 고친 사람도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조직원들은 어디서 어떻게 근무하든 최선을 다해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 전투력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스톡옵션을 줘서 생산력을 늘리는 방식이다. 원대한 비전 제시와 개별적 약탈 금지로 칭기스칸의 병사들은 성취욕에 불탔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기여한 만큼 대가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도 갖게 됐다. 이는 숫자가 적은 칭기스칸 군대가 엄청나게 많은 상대방을 제압한 비결이기도 하다. 칭기스칸이 제국을 세우는 첫머리에서 '개별 약탈의 금지'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수많은 기득권층의 반대를 감내하면서도 구성원 전체에게 평등한 분배를 약속했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 모두가 전투를 자기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은 전 지구적 영토 정벌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800년 전의 신경영, 이것은 칭기스칸 제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성공 비결이었다.
속도 숭배주의자들
물리학에 E=½MV²이라는 운동에너지 공식이 있다. 에너지(E)를 군대전투력으로 보면 질량(M)은 병력 규모, 속도(V)는 기동성쯤이 될 것이다. 전투력은 병력 규모에 정비례하지만 속도에는 제곱 비례한다. 따라서 몽골처럼 적은 병력으로 대병력을 무찌르는 지름길은 기동성을 높이는 것이다. 수적 열세에서 세계 정복에 나선 몽골 유목민들은 사람 수를 당장 늘릴 수는 없지만 속도는 늘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몸에도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다녔다. 그들은 특히 말의 효용성에 주목했다. 유목민들은 '말의 가축화'를 이뤄냈다. 그것은 인류사에 획기적인 성과요, 사건이었다. 그들은 가축으로 키운 말을 이용해 보병과 보급선을 두지 않는 간편한 기병체제를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놀라운 행군 속도와 신속한 명령 체계를 창출해 농경 정착문명의 군대를 제압했다.
유목군대는 군사 장비도 경량화해 속도를 늘렸다. 당시 유럽 기사단 갑옷과 전투 무기의 무게가 70kg인데 반해 유목민 군장은 7kg밖에 되지 않았다. 활과 화살도 요즘 표현을 쓰자면 '신소재'로 만들어 가볍되 멀리 날아가도록 고안해 냈다. 군량 무게를 줄이는 것도 행군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요즘 인스턴트 음식의 시초 형태로 전투 식량을 마련해 군수보급품 무게를 가볍게 했다. 보르츠(육포)가 대표적인 예다.
몽골 군대는 원정 전쟁을 치르려면 군대 이동은 물론, 군수 물자, 병참, 식량을 운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전장까지 동물을 끌고 다니면서 보급 문제를 해결했다. 정착민들처럼 지켜야 할 근거지가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나 아이들은 병사들의 전선 후방에서 가축을 돌보며 방목과 군량 지원을 동시에 해결했다. 몽골 군대가 육포 같은 전투 식량을 이용하고, 부족한 보급품도 현지에서 조달했다는 게 기동성에 얼마나 유리한 조건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속도에 관한 한 누구보다 열렬한 숭배자였다.
전쟁이나 축구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속도의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성공 비결이다. 세계적인 초우량기업 포스코는 수년 전까지 거대조직의 비효율성이 드러나는 ‘조직 동맥 경화’로 고심하고 있었다. 유상부 포스코 회장은 지난 2000년 말 "조직 내 부서 간의 장벽 때문에 정보 공유가 안 돼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은 후, 외국계 컨설팅사와 사내직원을 대거 투입해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의사결정이 벤처기업만큼 빨라졌고, 과거에는 한 달 이상 걸리는 사안이 사흘 내에 이루어졌다. 포스코측은 "경영혁신에 2,000억 원이 들었지만 4년 만에 경비절감액만 4,000억 원에 이르고 무형의 효과는 측정이 불가능한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적의 군대도 아웃소싱하라
한 가지 일만, 자기 앞의 것만 잘하면 되는 세상은 갔다. 운동 선수도 멀티 플레이어, 연예인도 만능 엔터테이너여야 한다. 이제 호환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낙오의 운명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젊고 살아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으면 조직의 호환성을 높여야 한다.
칭기스칸 군대의 특징은 점령지의 종교나 문화 부문에 일체 관여하지 않은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하층을 그대로 둔 채, 상층부만 부수는 데 주력했다. 군대 조직도 천호제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피라미드 형태를 갖췄다. 그래서 칭기스칸이 손을 한 번 들면 그의 군대는 10만이 됐다가, 한 번 더 들면 20만, 30만, 40만으로 얼마든지 변신했다. 군대 숫자가 고무줄처럼 신축적일 수 있는 비결은 어떤 병사를 충원하더라도 충분히 전술기량을 펼치는 호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정착문명 군대는 각자 보직이 나뉘어 있지만, 칭기스칸의 군대는 모든 군사가 기본전술 기능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더욱 놀랍게도 칭기스칸 군대의 호환성은 전쟁에서 이긴 뒤 포로들을 흡수·편입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칭기스칸은 적이든 아니든 쓸모 있는 모든 사람을 확보하려 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기술자들을 따로 골라내고 부족한 군사들을 현지에서 충원하는 방식으로 항상 인력 풀을 운영하는 놀라운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철저한 '아웃소싱'이다. 아웃소싱이란 기업이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핵심역량 외의 전산 등 주변 업무를 외부에 맡기는 경영전략을 의미한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쌓이지 않는다
제국 성립 후 170여 년, 칭기스칸 사후 150여 년 만에 몽골제국은 몰락했다. 그러나 일반 국가의 흥망성쇠를 논할 때 쓰는 말뜻 그대로의 멸망은 아니었다. 일단 칭기스칸의 나라는 멸망한 적이 없다. 원제국이 쇠퇴한 뒤에도 왕조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점령지 중원에서 물러나 카라코롬으로 철수했을 뿐이다. 그들이 출발했던 곳, 양 치고 말 기르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줄곧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몽골제국은 많은 후계 국가들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무굴제국이다. 무굴은 힌두어로 몽골을 뜻한다. 타지마할 궁전도 몽골인들이 세웠다. 무굴제국은 1562년 유목민인 티무르의 손자 바베르가 인도에 세운 나라로, 1858년까지 계속됐다. 오스만 투르크제국 또한 몽골의 제국 성격을 이어 받은 후계국가로 꼽힌다. 킵차크칸국의 한 갈래인 크림칸국은 1783년까지 계속 됐다.
몽골제국이 쇠퇴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모적인 후계자 경쟁이었다. 유목 기마민족은 예외 없이 여러 부족의 연맹체였다. 권력 중심부가 흔들리면 해체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를 비롯한 몽골 칸국들 역시 계승 분쟁에 휘말려 들었고, 이는 결국 제국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테크노 헤게모니의 상실도 한 이유가 됐다. 여기서 총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중세 시대의 옛날 총은 칼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것은 불편하고 시끄러운 무기였다. 하지만 총의 발명이야말로 몽골제국의 퇴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몽골 유목민이 세계를 정복한 무기는 말 탄 푸른 군대의 스피드, 기동성이었다. 그들은 날이 잘 선 칼과 멀리 날아가 깊숙이 꽂히는 화살 촉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문명 국가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총이 출현하면서 유목 군대는 스피드를 놓쳐버렸다. 유럽인들은 이 신무기 덕분에 몽골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들은 처음 듣는 총소리에 놀라 대오를 흐트러뜨렸다. 몽골 군대는 말들이 총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적응 훈련을 황급히 했지만, 총의 개선 속도는 말의 적응 속도를 앞질렀다. 이후 총포는 유럽에 테크노 헤게모니를 줬다.
정체성 상실도 몽골제국 멸망에 큰 원인으로 꼽힌다. 칭기스칸은 이렇게 경고했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몽골제국의 후대 지도자들은 끝내 이 충고를 되새기지 못했다. 소수인 몽골 사람들은 다수의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해 정착 지역에 생계 근거를 뒀다. 그 결과 그들의 존재 기반인 수렵과 유목성을 스스로 거세하고 현지에 동화돼 버렸다. 그것은 결국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나라는 100여 년 만에 쇠퇴를 맞았다. 그 원인은 생각하기에 따라 앞서 지적한 것들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이유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창업 정신인 유목 이동 마인드의 상실이다.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오늘날 세계를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라고 한다. 지금 일고 있는 전 지구적 격변의 대폭풍은 인류의 삶을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놓는 거대한 지각변동이라는 얘기다. 과거 인류가 석기문명시대에서 청동기문명으로, 다시 철기문명으로 바뀌면서 예전에 상상할 수 없이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됐듯. 오늘날 정신 없이 흘러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착문명의 긴 지배가 끝나고 드디어 유목 이동문명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선악이나 기호 판단을 유보하고 생각해보자.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21세기를 논하면서 세계화와 정보화, 친환경화라는 개념을 말하고 있다.
먼저 세계화를 보자. 거대한 지구가 하나의 작은 촌으로 바뀐 것은 단 몇 백년 전만 해도 참으로 생각키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런 현상을 만든 사람들, 지구를 좁게 만든 사람들이 바로 유목민이다. 이들은 단순히 정복을 넘어, 사람과 물자,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되는 사회를 만들었다. 정보화에서도 유목민들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유목민들의 정보화 욕구는 생존을 위한 최선 수단이었다. 그 소통 욕구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이후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으로 빛을 발한다. 역참제가 그것이다. 수도를 중심으로 삼아 제국 전 지역에 낸 정보망, 그것도 5km마다 정보전달자를 두었던 역참제는 말이 구현했던 일종의 인터넷이었다.
21세기 생존법은 우리들 심장에 새겨져 있다
환경·정보화·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른 21세기는 분명 유목민 시대다. 현대는 ‘잡 노마드(Job Nomad)’ 사회로 가고 있다. 잡 노마드란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이란 뜻의 신조어로 과거의 직업 세계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그리고 한 가지 업종에 매달려 살지 않는다. 이 신종 부류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분석하고 자신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현대화를 실천하는 주인공이다.
잡 노마드는 과거 유목민의 기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결핍을 극복하는 능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 풍부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 뿌리와 날개를 동시에 지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자유만이 진정한 안정을 보장해 준다.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체질로 신명과 한(恨)을 말한다. 몽골 유목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눈물과 신바람의 세계를 그렇게 수만 년 살아왔다. 우리는 몽골 유목민들과 핏줄이 같다. 우리 몸 속엔 칭기스칸과 같은 피가 흐른다. 그들이 피눈물로 신바람으로 무장했을 때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유라시아 대통합을 달성했듯, 우리도 한과 신명으로 21세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800년 전에 살았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가슴으로 눈으로 맥박으로 고동소리로 21세기의 생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생존법은 우리 심장과 핏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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